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축이라는 단어를 해독해야 합니다. 영어로 축은 Assis Power라고 불리며, Assis는 축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퀴의 축이나 지구의 축과 같습니다. 이 이름은 우연히 붙여진 것이 아니라, 야망이 넘치고 감자튀김을 좋아했던 남자 베니토 무솔리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936년,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은 로마-베를린 조약을 체결하여 두 나라 간의 공식 동맹을 표시했습니다. 무솔리니는 웅장한 연설에서 이 동맹이 로마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견고한 축이며, 그 주위로 전 세계가 회전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전 세계의 운명을 통제하는 권력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바퀴의 축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요. 무솔리니는 이 동맹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와 독일이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세계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축'이라는 이름은 로마나 베를린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1940년 일본이 삼국 동맹에 참여하면서 동맹은 로마, 베를린, 도쿄의 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축'이라는 단어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소련 및 기타 여러 나라에 맞서 전 세계의 축이 되기를 원하는 강력한 군사 동맹입니다.

하지만 이 축이 무솔리니가 상상한 것처럼 지속될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기울어진 바퀴축처럼 몇 바퀴 돌다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축에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라는 세 대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야망 있는 군사 동맹을 형성했습니다. 주요 회원국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축의 선두주자인 나치 독일은 이 남자에 의해 이끌어졌습니다. 유명한 콧수염과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이 남자입니다. 독일은 강력한 군대와 첨단 기술, 그리고 빠른 전쟁 전술을 가지고 있어 신속하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동유럽을 침략하여 독일 민족을 위한 생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 뒤에는 축의 개념을 생각해낸 무솔리니가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알바니아를 침략하고 발칸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군대는 약하고 자주 패배하여 독일이 구원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그룹 내에서 약한 친구와 같아 항상 독일이 짐을 져야 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히데키와 같은 군부 세력에 의해 이끌리는 강력한 세력이었고, 히로히토 천황이 상징이었습니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하고자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점령하여 자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주로 석유와 고무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1931년에 만주를 침략하고, 1937년에 중국 전역을 침략하며, 1941년 진주만 공격으로 충격을 주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였습니다. 이 세 나라 외에도 추축국에는 1940년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참여한 헝가리와, 석유를 원해서 참여한 루마니아, 1941년에 주로 소련에 맞서기 위해 참여한 불가리아가 있습니다. 핀란드는 비공식적으로 가입했지만 독일과 협력하여 소련에 맞섰습니다. 독일이 지배하는 남부 프랑스 정부와 같은 괴뢰 정부들도 추축국 편에 섰습니다. 총 추축국은 약 8개에서 10개국이었지만, 주된 힘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1940년에 삼국 동맹 조약과 같은 조약을 통해 연합하여 영국과 프랑스가 세운 세계 질서를 전복할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왜 추축국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까요?

추축국이 형성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혼란한 시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을 심하게 처벌하고, 영토를 잃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하였으며, 군대는 10만 명으로 제한되었습니다. 독일 국민은 가난하고 실업 상태에 있으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독일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빵 한 덩어리의 가격이 수백만 마르크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지도자가 구세주처럼 등장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퇴역 군인인 그는 1933년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는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재무장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상은 인종 차별주의에 기반하여 아리안, 즉 독일인을 초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무능한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했습니다. 그는 1922년에 로마 행진을 조직하고 권력을 잡아 독재 체제를 세웠습니다. 무솔리니는 강력한 이탈리아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반대파를 억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새로운 로마 제국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일본은 별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은 현대화되어 아시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그들은 서구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공정한 영토 분배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대공황은 일본에 자원이 부족하게 만들었고, 특히 석유가 부족했습니다. 군부가 권력을 잡고 천황을 상징으로 삼아 아시아를 침략하여 자원을 찾았습니다. 만주 침략과 중일 전쟁은 그들의 야망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영국, 프랑스, 미국이 세운 세계 질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련을 싫어하고 영토를 확장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세계의 축이 되기 위해 추축국을 형성했습니다.

추축국은 빠른 승리로 시작했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독일은 서유럽을 휩쓸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와 같은 일부 국가는 몇 주 만에 무너졌고, 프랑스라는 강대국은 단 6주 만에 항복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와 발칸 반도에서 약탈을 위해 뛰어들었지만, 연속적으로 패배하여 독일이 그리스와 리비아에 구원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을 지배하며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에서 전쟁을 확대하며, 하와이의 미국 함대를 파괴한 진주만 공격으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은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지역을 점령하고 베트남과 서구 식민지로 군대를 빠르게 진입시켰습니다. 정점에서 추축국은 서유럽에서 동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태평양까지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 축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전략적으로 거의 협력하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약해 독일에게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었습니다. 야망은 너무 컸고 적을 과소평가했습니다. 독일은 1941년에 300만 군대로 소련을 침략했지만, 러시아의 겨울에 빠져 수백만 명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일본은 잠자는 거대국 미국을 건드려 1942년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 해군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베니토 무솔리니, 축의 개념을 생각해낸 사람.

그는 야망이 넘치는 지도자였지만, 자신의 붕괴뿐만 아니라 추축국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무솔리니는 1922년에 권력을 잡았고, 독일의 국가 원수보다 10년이나 빨랐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국가 안에, 국가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구호로 세계 최초의 파시스트 정권을 세웠습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실제로 이탈리아는 경제와 군사적으로 약한 나라였습니다. 이탈리아 산업은 뒤떨어져 있고, 군대는 전문성이 부족하며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솔리니는 선전에서 매우 능숙했습니다.

그는 말에 타거나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열광적인 군중 앞에 서 있는 사진에 등장하여 슈퍼히어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무솔리니의 야망은 그의 능력을 초과했습니다. 그는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침략했지만, 이 승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이탈리아를 고립시켰습니다. 독일과 동맹을 맺었을 때, 무솔리니는 독일의 힘을 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실패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군대는 영국 군대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리스에서는 1940년에 이탈리아가 공격했지만, 작은 그리스 군대에 의해 저지당했습니다. 독일은 소련 공격 계획을 지연시키기 위해 구원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1943년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했을 때, 무솔리니의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맹국에 의해 전복되어 감금되었습니다. 독일은 무솔리니를 구출하고 북부 이탈리아에 샤로 공화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단지 꼭두각시일 뿐이었습니다. 1945년 4월 독일이 패배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게릴라에게 붙잡혔고, 결국 그가 맞이해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미국의 밀란 광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군중의 분노를 샀습니다. 축의 개념을 생각해낸 사람은 수치스럽게 끝났고, 그의 축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추축국의 실패는 단지 무솔리니의 실수 때문만이 아닙니다.

추축국의 패배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영화처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단결 부족입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각자의 목표가 있으며 거의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유럽을 지배하고 싶어했고, 일본은 아시아를 지배하고 싶어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단지 약탈하고 싶어했으며, 공통의 전략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세 대의 차와 같았고, 축은 부러졌습니다. 두 번째 실수는 상대를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독일은 소련이 몇 달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련 군대는 2000만 명의 강철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초고속으로 무기를 생산했습니다.

다음으로 추축국의 자원 제한이 있었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석유와 고무가 부족했고, 이탈리아는 산업과 강력한 군대가 부족했습니다. 반면에 연합국은 거대한 경제를 가진 미국, 대군을 가진 소련, 레이더와 정보망을 가진 영국이 있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데이 사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과 같은 큰 전환점이 추축국을 종결지었습니다. 추축국의 이름은 단지 은유가 아니라 야망, 증오, 실수의 상징이었습니다. 무솔리니는 추축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실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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